공병우 박사님의 연혁공병우 박사님의 연혁

Posted at 2008/10/06 22:12 | Posted in 한글 관련 자료

한글 및 3벌식 타자기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고 공병우 박사님의 연혁입니다.

1906. 12. 30. 평안북도 벽동군 성남면 남성동 388번지에서 나다.
1926. 평양 의학 강습소를 수료하다.
1926. 10. 조선 의사 검정 시험에 합격하다.
1927. 신의주 도립 병원 내과 및 검사실에 근무하다.
1929. 경성 의학 전문학교 세균학 교실에서 세균학을 공부하다.
1930. 경성 의학 전문학교 부속병원 안과에서 근무하다.
1934. 경성 대학 병리학 교실에서 안과 병리를 연구하다.
1936. 해주 도립 병원 안과 과장으로 근무하다.
1936. 7. 일본 나고야 제국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다.
1938. 9. 공 안과 의원을 개설하다(서울시 종로구 서린동).
1943. 1. 《소안과학》를 펴내다.
1947. 5. 한글 타자기 연구 개발을 시작하다.
1949. 10. 국회 의장상 받음(전국 과학 전람회에 한글 타자기 출품).
1949. 11. 고성능 한글 타자기를 처음으로 발명하다.
1950. 3. 3벌식 '공 속도 한글 타자기'를 최초로 개발하고 이와 함께 3벌식 글씨꼴을 개발하다.
1954. 6. 쌍촛점 타자기를 발명하다.
1956. 10. 안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다.
1958. 10. 대통령 표창 받음(한글 타자기 발명 공로).
1959 1977. 재단법인 한글 학회 이사를 지내다.
1960. 3. 서울 맹인 부흥원(서울 강동구 성내동)을 설립하고 맹인 점자 교육과 한글 타자 교육을 실시하다.
1962. 3. 한글 학회 부설 한글 기계화 연구소를 발족하다(한글 기계화지 첫 발간).
1962. 8. 대통령 표창 받음(건국 공로 식산 표창장).
1965. 5. 한국 콘택트 렌즈 연구소를 설립하다.
1965. 10. 한국 최초로 약시 검안을 위한 약시부를 신설하다.
1967. 9. 한글 텔레타이프를 개발하여, 한국 치안국과 통신사에 설치 활용하게 하다.
1968. 3. 한 영 겸용 타자기를 발명하다.
1968. 4. 공병우 타자기 연구소를 설립하다.
1968. 10. 문화공보부 장관상 받음(한글 전용 공로자상).
1971. 8. 점자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다.
1971. 12. 중국 주음 부호 타자기를 발명하다.
1972. 3. 한국 맹인 재활 센터를 설립하여, 중도 실명자 재활 교육을 시키다.
1972 1977. 한글 학회 정기 간행물《한글 새소식》편집 위원으로 위촉, 공 병우 3벌식 한글 타자기로 입력 편집하다.
1974. 3. 외솔 문화상 받음(한글 문화 발전 공로).
1975. 10. 은장 박애장 받음(대한 적십자사).
1977. 3. 사진 연구를 시작하다.
1978. 5 6. 《공병우 사진집》을 발간(꽃, 6월의 모습, 나의 사진집, 물, 단풍, 하늘, 습작)하다.
1979. '한 일 국제 맹인 타자 경기 대회'를 열다.
1979. 3. 서울 적십자사 총재 표창 받음(모범 납세자).
1979. 10. 대한 적십자사 총재 표창 받음(특별 회원으로 적십자 사업 발전에 기여).
1979. 11. 일본 '가나'와 로마자 겸용 3단 타자기 발명 특허 등록하다(일본국).
1980. 1 5. 공 병우 사진 전시회를 개최하다(서울, 제주, 광주, 부산, 대구 등).
1980. 2. 종로구청장 표창 받음(새마을 저축 증대 기여).
1980. 5. 평안북도 첫 문화상 받음(첫 평안북도 도민의 날).
1981 1988. 미국에서 한글을 컴퓨터화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조국 민주화 운동을 하다.
1981. 4. 국민훈장 석류장 받음(맹인 재활 사업 공로).
1981. 4. 공 병우 사진집 발간(공병우 사진집 1호, 2호, 홍도 및 백도, 너와집, 절, 울릉도, 공병우 작품집)하다.
1982. 3벌식 한글 전동 타자기를 개발하다.
1985. 매킨토시 컴퓨터로 직결식 한글 폰트를 한국 최초로 개발하다.
1987. 1. 제1회 서재필상 받음(한글 전용, 한글 과학화 연구 및 운동 공로).
1988 1995. 한글 문화원을 개설하고, 한글 전용 운동과 한글 과학화 및 한글 문화 발전 사업에 힘쓰다.
1989. 3벌식 한글 전자 타자기를 개발하다.
1989. 공 병우 자서전《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대원사)를 펴내다.
1990. 10. 9. 은관 문화 훈장 받음.
1994. 10. 9. 세종 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다.
1994. 12. 매킨토시용 무른모 한손자판을 개발하다.
1995. 1. 《월간 중앙》1월호에 한국을 움직인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히다.
1995. 3. 7.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다.
1995. 3. 25. 금관 문화 훈장 받음(추서).


출처 : http://www.hangeu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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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를 아시나요?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를 아시나요?

Posted at 2008/10/06 18:09 | Posted in 우리글 한글
오늘이 10월 6일이니 내일 모레, 글피인 10월 9일이면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이 한글을 창제한 10월 9일을 기념하여 만든 날이라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한글날의 정확한 유래를 알고 계신지요?

한글날이 다가와서 그런지 다음 메인 신지식 화면에 잠시 유래를 아느냐는 글이 있어 클릭했더니 나와 있군요.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해보니 국립국어원이군요. 

출처 : 한글날의 유래



한글날이 오늘날과 같이 10월 9일로 정해지게 된 데에도 곡절이 많았다. 세종은 한글을 만드는 작업을 은밀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실록에도 한글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분명히 나오지 않는다. 왕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건은 날짜를 정확히 명시해서 기록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한글 창제와 관련된 기록은 실록에 전혀 보이지 않다가 1443년(세종 25) 12월 조의 맨 끝에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서 그냥 ‘이번 달에 왕이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3년 뒤인 1446년(세종 28) 9월 조의 맨 끝에 역시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서 ‘이번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是月訓民正音成)’는 기록이 나온다.

   이 두 기록을 놓고서 현대의 학자들은 약간의 혼란에 빠졌다. 그래서, 1443년 12월에 한글이 일단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거기에 문제점이 많아서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3년 동안 해서 1446년 9월에 한글을 제대로 완성했다는 식으로 해석을 내리게 되었고, 그렇다면 1443년 12월보다는 1446년 9월을, 한글이 만들어진 시기로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실록에 9월 며칠인지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니 그냥 9월 그믐날로 가정하고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40년대에 방종현(方鍾鉉) 선생이 실록의 1446년 9월 조의 기록은 문자로서의 한글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책(소위 해례본)이 완성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함을 지적하였다. 실록의 1446년 9월 조의 기록을 잘못 해석하였던 학자들은 한편으로 민망하긴 했지만, 1446년 9월에 훈민정음이 반포되었으니 이 때를 한글날로 정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변명을 하였다. 그래서 10월 29일이 한글날로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1446년 9월에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다는 것도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실록의 1446년 9월 조 기사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고가 완성된 것을 세종에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당시 원고가 완성된 뒤에도 책이 간행되어 신하들에게 하사되기까지는 통상 몇 달 이상 걸린다. 따라서 1446년 9월에 훈민정음이 반포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즘 ‘훈민정음 반포도’라는 그림까지 그려서 걸어 놓은 곳도 있는데, 당시에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어떤 공식 행사를 열었다는 기록도 없다. 요컨대 한글날이 10월 29일로 정해졌던 것은 학자들의 사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웃지 못할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본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정인지의 서문에 ‘세종 28년 9월 상순’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다. 역시 정확한 날짜는 아니나 애초에 9월 그믐으로 잡았던 것에서 20일 정도 앞당길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10월 29일에서 20일을 앞당겨서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게 되었다.

   한글날이 정해지게 된 경위는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고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으나, 세종이 한글을 만든 취지와 한글의 과학성을 온 국민이 되새겨 볼 기념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어느 언어학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가 만들어진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연다고 한다. 한글이라는 좋은 문자가 지금 나의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글날이 아니라도 가끔씩은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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